자주는 아니지만, 필자는 1년에 서너 번 관현악 연주를 보러 공연장을 찾습니다. 오케스트라 편성의 연주는 동서양의 악기를 막론하고 지휘자의 손 끝으로 만들어지는 어우러짐과 웅장함에 늘 가슴 벅찬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그런데 관현악 연주를 볼 때마다 공연 기획자 입장에서는 늘 같은 아쉬움을 느낍니다. 악기를 다루는 손이나 몸짓과는 달리 대부분의 연주자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무표정’을 유지합니다. 이는 마치 ‘틀리지 말아야지’ ‘언제 이 공연이 끝날까?’ 하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표정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합니다. 연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일부는 지휘자와 눈을 뜨겁게 마주치며 한 몸으로 선율을 타고, 일부는 지휘와 상관 없이 자신의 악보에 열중하기만 합니다. 물론, 많은 오케스트라의 연주자 구성이 정 단원과 객원이 섞인 형태로 이루어지다 보니 암묵적인 ‘공감대’ 형성이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텔레파시’를 노골적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지휘를 잘 따라가거나 악보에 충실하거나 하는 부분 이외에 연주 곡의 느낌을 몸으로 표현하거나 작곡가가 의도한 곡의 섬세함을 대신 설명해주는 연주자들의 표정을 찾기란 정말로 어렵기만 합니다. 물론, 관객들이 기대하는 그러한 표정들은 독주나 협연, 또는 앙상블 연주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표정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유독 관현악 연주에서는 그런 생동감 넘치는 표정을 찾아볼 수 없는 걸까요? 여기서 필자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여럿이서 호흡을 맞추어야 하는 합주에서 혼자만 음악에 심취해서 다른 연주자들과 달리 튀는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음악대학이나 관현악 합주 연습 때부터 이론이든 실기든, 악보에 따라 그에 맞는 얼굴표정과 느낌까지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각자가 표현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훈련은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악보의 어떤 부분에서는 각자가 자연스럽게 몸짓이나 얼굴로 표현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반드시 지휘를 주목하는 등 ‘자연스러움’과 ‘집중’의 모습을 마치 악보를 그리듯 사전에 지휘자와 연주자가 서로 교감하면서 연구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면 보다 더 생동감 넘치고 더욱 더 조화로운 합주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됩니다. 관객은 귀 외에 눈도 가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말로 멋진 연주는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고, 관객의 마음을 사로 잡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음정이나 박자의 조화는 물론, 연주하는 동작들의 세부적인 모습과 그 느낌을 표현하는 얼굴 표정을 통해서도 관객들의 눈을 충분히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악기를 다루는 기술은 지속적인 연습과 도전적인 훈련으로 터득할 수 있지만, 얼굴에서 나오는 표정은 연주하려는 음악에 대한 느낌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다룰 수 있을 때 표현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거나 연출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음악을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이 부분은 손에 힘을 빼고 부드럽게 연주해야 한다’라는 식의 교육 이전에 ‘이 부분은 고요한 바다를 상징하는 것으로, 바다에 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듯 부드러운 얼굴 표정을 다 함께 먼저 만들어보자’라는 식의 감성적 교육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차라리 앨범으로 듣는 관현악 합주가 더 섬세하고 듣기 좋을 수 있지만, 일부러 공연장을 찾게 되는 이유가 ‘살아있는 느낌을 현장에서 맛보고 싶어서’라면, 위에서 필자가 언급한 ‘표정이 살아있는 연주’를 음악성과 함께 뗄 수 없는 가치로 두는 것이 분명 필요할 것입니다.
허영훈
현 댄허커뮤니케이션즈코리아 대표
현 ㈜원업엔터테인먼트, ㈜케이스카이엔터테인먼트 기획부문 사외이
현 극동아트TV 전문위원
현 뉴스컬쳐 자문위원
현 공연문화예술 기획자, 프로듀서(공연, 뮤지컬, TV, 음악), 연출자, 진행자
뮤지컬 프로듀서 협회 회원, 공연기획자 협회 회원
서울문화재단 등록 예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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