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妓生)’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춤 ·노래 또는 풍류로 주연석(酒宴席)이나 유흥장에서 흥을 돋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관기(官妓) ·민기(民妓) ·약방기생 ·상방기생 등 예기(藝妓)의 총칭’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약된 의미로는 ‘잔치나 술자리에서 노래나 춤 또는 풍류로 흥을 돋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여자’를 말하는데요, 요즘 이러한 기생이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러한 기생 취급을 하는 장면들은 주위에서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도 지체 높으신 분들의 모임이나 행사에서, 또는 외국인들이 참여하는 국내 컨퍼런스 등에서 말입니다. 격조 높은 자리에서 고 품격의 한국 전통 공연을 준비하는 것은 이제는 보통의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실내악에서부터 한국무용, 판소리에 이르기까지 행사를 더욱 빛내기 위한 다양한 공연들이 기획되어 초청공연을 펼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참으로 이상한 일들이 심심찮게 벌어집니다. 분명 제목은 ‘초청 공연’인데, 공연에 집중하는 참석자들은 10%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공연은 공연대로 행사는 행사대로, 그렇게 따로 노는 것이 대부분이고, 오히려 공연이 대화에 큰 지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국회의원회관에서 벌어지는 초청공연에서 조차도 너나 할 것 없이 공연 중에 객석에서 일어나 악수를 하며 큰 소리로 인사를 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고, 해외에서 열리는 권위 있는 국제 회의 만찬 공연에서는 공연 중인 무대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거나 테이블에서 일어나 큰소리로 “지화자”를 외치며 단체로 건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장면들은 모두 필자가 직접 인솔한 공연에서 겪은 일이며, 그러한 장면을 만든 사람들은 외국사람들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 한국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혹자는 이런 얘기를 노골적으로 합니다. “참석한 사람들의 목적이 당연히 인사와 친교인데, 공연에 집중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 또는 “국악이 뭐냐? 옛날 기생놀음 아니냐?” 라는 것입니다. 그럼 왜 초청공연을 기획한 것일까요? 차라리 근사한 술집에서 수준 높은 접대를 받으며 행사를 갖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런 혹자들은 공연이 끝난 후 대기실로 들어와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공연자들의 심정을 생각해 본적이 있을까요? 국악공연자들은 한국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옛 기생과 같이 웃음이나 술을 파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최소한 국악을 학문으로 전공했고, 우리의 국악을 알리고 발전시키기 위해 세계 무대를 노크하며 국악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는 예술인들 입니다. 만약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 씨를 초청했어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러면 조수미 씨와 국악인들은 당연히 다르게 취급되어야 하는 예술인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필자가 적지 않게 경험한 그야말로 수준 높은 리셉션 파티에서는 참석자들 모두가 칵테일 잔을 들고 서서 옆 사람과 환담을 나누더라도 초청공연이 시작되면 잠시 이야기를 뒤로하고 무대를 바라보며 공연을 감상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내용도 모르는 이태리 성악이 무대에서 펼쳐지면 고상한 척을 하며 집중하면서도, 정작 단 하나의 국악기 이름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한국사람은 아닙니까? 본 칼럼을 통해 필자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기생놀음으로 취급되는 국악공연은 기획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선진국민이 갖추어야 할 문화예술의 가치는 어떤 것일까요? 분명한 한 가지는 공연과 기생놀음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코 선진국민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허영훈/
서강대 법학과 대학원 졸업
현 댄허커뮤니케이션즈코리아 대표
현 극동아트TV 자문위원
현 뉴스컬쳐 자문위원
현 공연문화예술 기획자, 프로듀서(공연, 뮤지컬, TV, 음악), 연출가,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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