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 적은 돈으로 오페라 후원자가 되다
대학연극 기획 시절. 지금 돌아보면 몇 푼 되지도 않는 공연비용을 만들기 위해 졸업한 선배 사무실로 찾아가서 아쉬운 소리해가며 눈치 살펴서 포스터 인쇄비 일부 충당하고, 자주 가는 학교앞 중국집 사장님에게 많이 팔아줄 거라고 큰소리쳐가며 팜플렛 귀퉁이에 광고 하나 받고, 그래도 모자라 독신으로 한국에 와있던 외국인 교수님들께 찬조금 받아서 공연을 만들었다. 얼마나 치사스럽던지 이 다음에 졸업하고 돈 많이 벌어서 전체 공연비를 내가 다 내고 무료 공연을 하는 날 아내와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서 감상해야지 하는 각오를 했었다. 시민의 날 축제라도 열리면 2천만원 정도 드는 불꽃놀이 비용을 후원해 주고는 사회자가 “이번에 시작하는 불꽃놀이 비용은 김용현씨께서 사모님께 드리는 선물로 후원해 주셨읍니다”라는 인사를 받겠다고 다짐했었다.
20년이 흘렀다. 아직도 생활비를 버느라고 허덕인다. 친구가 푸치니150주년 기념 오페라 명장면 갈라콘서트를 한다며 조금이라도 후원을 해달란다. 포스터 인쇄비도 못 미칠 금액을 약속했다. 평소 어려운 예술인들을 후원하기로 유명한 한국유나이티드제약 강덕영 사장이 후원회장으로 있는 클럽예가가 주최하는 공연이니 비용이야 강사장이 다 낸 셈이다. 공연은 성황이었다. 아내와 도착해보니 후원을 약속했던 다른 기업들이 뒤로 빠져버리는 바람에 공식후원사는 내가 운영하는 홍보대행사 달랑 하나다. 미리 보내 준 입장권을 잊고 갔어도 입구에서 기다리던 연출이 칙사 대접을 하며 R석 자리로 안내한다. 로비에서 팜플렛을 집어드니 진행요원이 “2천원입니다”하는 걸 연출이 “후원자시다”며 챙겨 준다. 진행요원들은 대번에 허리를 굽혀 “고맙습니다”라며 인사를 다시 한다.
강사장 부부와 앉아 공연을 보는 동안 라보엠의 ‘그대의 찬 손’도,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도 들리지 않았다. 20년 전 다짐했던 내 소망 하나가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아직도 가난을 못 면한 나지만 운이 좋아(?) 이 큰 공연에 어였한 후원자가 되어 마누라 앞에서 목에 힘주는 내가 멋있게 보이는 시간이었다. 살다보면 이런 횡재도 있다.(김용현. 공연홍보 www.how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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